목차
- 유기견, 그들도 삶을 살았고 죽음을 맞이한다
- 유기동물의 죽음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 존엄의 기준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있다
- 유기견 장례 사례, 보호자 없는 이별을 위한 노력들
- 유기동물 장례와 사회적 시스템의 필요성
- 마지막까지 존중받을 권리, 우리가 바꿔야 할 시선
1. 유기견, 그들도 삶을 살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반려동물 1,500만 시대. 수많은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가족의 일원으로 살고 있지만, 여전히 매년 10만 마리 이상의 유기동물이 거리와 보호소를 전전하다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유기동물에게 장례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다르다. “왜 그들은 장례조차 없이 떠나야 하는가?”이다.
유기견도 한때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잠들었을 것이고, 어떤 날은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거리로 내몰리고, 끝내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는 교통사고, 굶주림, 병, 추위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보호소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도 해마다 수만 마리에 이른다.
그들은 반려동물이라는 이름 대신, ‘관리 대상’이라는 말로 불리며 죽은 뒤에는 소각장으로 이송되거나, 일반 폐기물처럼 분류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그들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이 글은 그들에게도 존엄한 죽음을 말할 권리가 있고, 우리가 그 죽음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다루기 위한 시작이다.
2. 유기동물의 죽음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현재 한국에서 유기견을 비롯한 유기동물들이 사망할 경우, 대부분은 지자체가 운영하거나 위탁한 보호소를 통해 안락사 또는 자연사 처리가 이루어진다. 안락사 비율은 해마다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구조된 유기동물의 약 15% 이상이 안락사 대상이 되고 있으며, 자연사율까지 포함하면 사망 비율은 20~30%를 넘는다.
이렇게 죽음을 맞이한 유기동물은 대부분 공공 화장장 또는 지정된 동물 전용 소각시설에서 폐기물 처리 방식으로 소각된다. 장례 절차는 존재하지 않으며, 유골도 반환되지 않는다. ‘소유주가 없는 동물’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장 기본적인 장례의 예우조차 받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이다.
일부 자치단체나 동물보호단체는 죽은 유기동물의 시신을 공동으로 추모하거나, 기념 묘역을 조성하기도 하지만, 전국적으로 봤을 때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제도적으로 보장된 장례 문화는 전무한 상태다.
이러한 현실은 단순히 행정 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곧 우리가 생명을 어떻게 존중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가치 판단을 드러내는 지표다. 유기견의 장례 부재는 그들이 겪는 마지막 차별이자, 우리 사회의 윤리적 결핍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3. 존엄의 기준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있다
장례라는 것은 단지 죽은 이를 위로하는 의식이 아니다. 그 존재가 이 세상을 살아갔다는 흔적을 존중하고, 기억하기 위한 행위다. 그런데 왜 유기동물에게는 그 권리가 허락되지 않는가? 많은 경우, ‘주인이 없으니 장례도 필요 없다’는 논리가 작용하지만, 이는 존엄을 ‘소유’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잘못된 인식이다.
존엄은 소유 여부와 무관하다. 길에서 죽은 고양이나, 보호소에서 안락사된 강아지도 분명히 생명으로서의 고유한 가치를 지녔고, 감정과 기억이 있었으며, 고통도 느꼈다. 이들에게 장례가 필요한 이유는, 그들이 한 존재로서 이 땅을 살았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인정하기 위함이다.
또한 유기동물에게 장례의 개념이 도입되면, 사회 전체적으로 동물에 대한 인식과 생명 존중 의식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지금처럼 ‘쓸모없어지면 버려지고, 죽으면 없던 일로 처리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사람과 동물 사이의 정서적 격차와 윤리적 기준의 균형은 더욱 깨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살아있을 때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더라도, 죽음의 순간만큼은 존재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는 방식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4. 유기견 장례 사례, 보호자 없는 이별을 위한 노력들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유기동물의 장례를 고민하는 움직임이 작게나마 시작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유기동물의 죽음을 단순 폐기로 처리하지 않고, 공동 추모 공간을 조성하거나, 추모제를 개최하는 형태로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일부 보호센터에서는 안락사된 유기동물에 대해 소규모 추모의식과 위령제를 진행하며, 보호소 직원들이 직접 헌화와 추모를 주도한다. 또, 몇몇 동물보호단체는 봉사자들과 함께 유기동물 공동묘역을 만들고, 이름 대신 ‘무명’이라 적힌 묘비라도 세워주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후 입양’이라는 개념을 실천하는 보호자들도 있다. 비록 생전에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유기견이 세상을 떠나기 전 혹은 직후에 입양서를 제출하여 장례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는 행정적으로 복잡할 수 있지만, 죽음을 사랑으로 마무리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새로운 연대의 방식이다.
이러한 사례는 많지 않지만, 유기동물의 죽음이 무연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애도와 기억 속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장례문화가 더이상 보호자 유무에만 의존하지 않고,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다.
5. 유기동물 장례와 사회적 시스템의 필요성
유기동물 장례의 필요성은 단순한 감정적 호소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반드시 제도화되어야 할 윤리 시스템의 일부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는 유기동물 사망 처리 시 장례 절차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 마련이다. 현재는 대부분 행정 편의에 따라 폐기물로 분류되지만, 일부 보호소에서는 공공 예산을 활용한 장례 방식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둘째는 공동묘역, 공영 추모 공간, 위령탑 등의 조성이다. 유기동물이 사망한 후 일정 장소에 집단 매장하거나 화장 후 유골을 봉안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 시민들이 헌화하거나 추모하는 문화를 통해 사회적 관심과 참여도 동반 상승할 수 있다.
셋째는 반려동물과 유기동물 모두를 포함한 통합 장례 기준 마련이다. 현재는 반려동물 장례조차 법적 모호성이 큰 상태인데, 여기에 유기동물을 포함시키려면 공공기관과 시민사회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장례라는 형식으로 제도화될 때, 우리는 진정한 생명공동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6. 마지막까지 존중받을 권리, 우리가 바꿔야 할 시선
유기견은 단지 주인이 없는 개가 아니다. 그들은 한때 사랑받았고, 때로는 학대받았으며, 결국은 잊혀진 존재였다. 그렇다고 해서 존재의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땅을 살다간 모든 생명은 존중받고 기억될 권리가 있다. 장례는 그 권리를 지켜주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우리가 유기견의 장례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지 동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생명에 대한 관점을 다시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다. 그들이 죽음을 통해 무가치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라도 품에 안길 수 있도록 하는 구조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죽어서야 이름을 얻게 되는 개들이 사라지게 하자’는 말은, 장례가 끝이 아니라 존중과 애도의 출발점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바꾸는 건 장례의 형식이 아니라, 생명을 바라보는 태도다. 그리고 그 변화는 유기견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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