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반려동물 장례는 사치일까, 기본 권리일까?

함께사는세상 2025. 5. 22. 09:09

목차

  1. 반려동물 장례, 사치라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2. 왜 일부는 장례를 ‘과한 감정’이라 말하는가
  3. 장례는 소비가 아니라 기억의 정리다
  4. 세계 각국은 어떻게 반려동물 장례를 받아들이고 있을까
  5. 보호자의 심리 회복과 장례의 공공성
  6. 반려동물 장례, 이제는 기본 권리로 바라봐야 할 때

1. 반려동물 장례, 사치라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반려동물과의 공존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2024년 기준,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전체의 4분의 1을 넘었고, 반려동물은 이제 ‘가족’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난 이후 장례를 치르는 것에 대해 “굳이?” “과한 거 아니야?” “사치스럽다”는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나 가족 내 대화에서는 “사람도 제대로 장례 못 치르는 세상인데, 개 장례는 무슨”이라는 말이 종종 회자된다. 이 말에는 ‘반려동물은 가족이 아니다’는 오래된 전제, 그리고 장례는 인간만을 위한 행위라는 편견이 함께 들어 있다.

하지만 보호자 입장에서 반려동물은 단지 키우는 동물이 아니라, 삶의 정서적 중심이자 하루 일과의 일부를 차지하는 존재다. 그 죽음을 아무런 의식 없이 넘기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장례가 사치인지, 권리인지는 단지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존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다.
이제는 반려동물 장례에 대해 더 깊고 섬세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2. 왜 일부는 장례를 ‘과한 감정’이라 말하는가

반려동물 장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대부분 감정의 ‘경중’을 판단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된다. 즉, “사람의 죽음과는 다르다”, “그건 그냥 동물일 뿐이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해, 보호자의 슬픔을 ‘과장된 감정’으로 치부하는 문화가 아직도 존재한다.

이는 ‘감정 서열화’에 가까운 접근이다.
가족의 죽음은 깊은 슬픔으로 인정되지만, 반려동물의 죽음은 한 단계 낮은 슬픔, 혹은 감정 조절 실패처럼 여겨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보호자는 슬픔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장례를 치르는 것조차 ‘부끄럽다’고 느끼는 심리적 위축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펫로스(pet loss)는 과학적으로도 사람을 잃은 슬픔과 유사한 뇌 활동과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장례는 이런 슬픔을 조용히 정리하고, 감정을 회복할 수 있는 안전한 통로다. 그렇다면 문제는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사회가 감정을 얼마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있다. 즉, 반려동물 장례를 ‘과한 감정’으로 폄하하는 시선은 사실상 슬픔을 표현할 권리 자체를 제한하는 문화적 차별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3. 장례는 소비가 아니라 기억의 정리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 장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비용’이다. 화장 비용, 유골함, 추모 서비스 등은 실제로 적지 않은 금액이 소요된다. 그래서 일부는 “이건 누리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서비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례는 본질적으로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을 정리하는 의례다.
작은 편지 한 장, 반려동물의 장난감 하나, 고요한 음악과 함께 한 송이 꽃을 두는 것만으로도 보호자는 이별을 인지하고 감정을 정돈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처럼 장례는 '화려한 의식'이 아니라, 슬픔을 감정적으로 다루기 위한 심리적 구조다.
사람의 장례 역시 그런 이유로 존재하듯, 반려동물 장례 역시 같은 구조를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장례가 반드시 고가의 패키지여야 할 이유도 없고, 누군가의 방식이 더 ‘충분하다’, ‘모자라다’라고 평가할 기준도 없다.
진짜 중요한 건, 사랑했던 존재를 기억하고 보내줄 수 있는 정서적 공간을 가졌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이 공간은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반려동물 장례는 사치일까, 기본 권리일까?

 

4. 세계 각국은 어떻게 반려동물 장례를 받아들이고 있을까

국내에서는 여전히 반려동물 장례가 낯설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이미 반려동물 장례가 ‘문화’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예를 들어 일본은 1990년대부터 동물 장례 시장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반려동물 전용 사찰, 납골당, 위패제작, 천도재까지 운영된다.
또한 유골을 나무로 환원하는 수목장 문화도 점차 확산 중이다.

영국과 독일 등 유럽 일부 국가는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반려동물 전용 공동묘지를 운영하고 있고,
미국은 사설 장례기업 외에도 펫로스 상담사가 존재하며, 반려동물 사망 보험이 실질적으로 보급되고 있다.

이처럼 반려동물 장례는 사적인 슬픔을 넘어 공공의 감정 처리 구조로 사회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그 나라가 ‘반려동물을 생명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제도와 문화로 표현하고 있는 방식이다.
한국 역시 이제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인정한다면, 죽음 또한 가족의 방식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권리를 사회가 보장해줘야 한다.

 

5. 보호자의 심리 회복과 장례의 공공성

반려동물의 죽음은 단순한 상실 이상의 감정적 충격을 준다.
하루를 함께 시작하고 끝냈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일상의 리듬 자체가 무너지는 경험이다.
이런 감정의 붕괴를 방치하면, 우울증, 무기력, 대인기피, 수면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장례는 이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적 절차다.
보호자는 장례를 통해 “이별이 끝났음을 인지”하고, “감정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안전한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심리 치료적 관점에서도 매우 효과적인 감정 회복 장치로 평가된다.

즉, 반려동물 장례는 단순히 보호자의 선택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공공의 요소다.
누군가가 이별 앞에서 감정을 정리할 수 없는 사회는, 결국 공감 능력이 줄어드는 사회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반려동물 장례를 공공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인기 품종을 잘 보내주자’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과 그 보호자가 존엄하게 이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6. 반려동물 장례, 이제는 기본 권리로 바라봐야 할 때

장례는 선택이지만, 동시에 권리다.
그 권리는 슬픔을 감정적으로 처리할 권리이자, 사랑했던 존재를 책임 있게 기억할 권리다.
그리고 그런 권리는 반려동물 보호자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반려동물 장례를 기본권으로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건 세 가지다.
첫째,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공공 인프라의 확충 - 공공 화장장, 공동 추모 공간, 저비용 장례 프로그램 등.
둘째, 장례에 대한 인식 개선과 교육 - 반려동물 생애주기 교육에 장례 과정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셋째, 감정에 대한 존중 문화의 정착 - 이별 앞에서 흘리는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분위기다.

이제 반려동물 장례는 더 이상 일부 사람들의 특권이나 사치로 남아서는 안 된다.
그건 보호자의 책임이자, 생명과 함께한 시간을 제대로 마무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리고 그 예의는, 이 사회가 얼마나 성숙한 공동체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